지난주였던 택시운전사 가족 단관이 미뤄져 오늘 보고 옴. 힘들게 보고 왔네.
12대 대선 이후로 엄마와 정치적인 대화는 나누지 않는데 이건 엄마보다 내 멘탈을 위함이었다. 엄마는 요즘 노무현 전대통령 다큐도 흥미롭게 보고, 현 정권에 대해 호의적기도 하고 그렇다. 남들처럼 박근혜 욕도 옴팡지게 하고. 그러고 나면 내 머리속에 드는 생각은 오로지, '그러면서 박근혜를 왜 뽑았어?', '박근혜 뽑은 사람이 할 소리야?' 같은 것. 이게 안그러고 싶어도 그렇게 잘 안된다.
택시운전사 개봉에 즈음하여 TV 영화채널에서는 역시 광주 민주화 항쟁을 주제로 한 '화려한 휴가' 같은 영화도 해주고, 엄마는 이것도 꽤 흥미깊게 보더라. 어쩜 저럴 수 있냐며 분통해하며 보는데, 진지하게 몰랐냐고 물으니 전혀 몰랐다고 한다. 몰랐으니 다행이랄까. 알면서도 박정희나 박근혜 두둔해온 엄마의 과거를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어서...
집안엔 그런 어른들 뿐이라 그럭저럭 익숙했는데 12대 대선이후로는 내 머리로 그 모든게 이해가 안돼 너무 힘들더라. 그들이 살아온 시대를 겨우 존중하나, 도저히 이해는 못하는 다음 세대였다.
택시 운전사는 만듦새 여기저기가 상당히 투박해, 이 사람들은 영화를 처음찍나? 싶은 생각이 드는 장면들마저 있었지만 배우들의 열연과 눈앞에 펼쳐지는 광주의 모습이 너무나 진짜 같아 - 진짜인지 아닌지 나는 알 수도 없는 사람이라는게 죄스럽다. -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영화가 끝나고 나니 새삼 느껴지는 그 날들의 무게에 감정은 더 격해졌던 것 같고. '26년', '화려한 휴가'도 모두 영화관에서 봤는데 앞선 두 영화와 다른 관점에서 훌륭했다. 사실 '화려한 휴가'는 그렇게 못만든 작품이라 생각하지도 않고. 몇몇 사람들이 '택시 운전사'의 만듦새에 크게 불만족하는 것 같던데, 내 경우는 역피셜로 넘어갈 수 있는 정도였던 것 같다. 역사의 무게를 얹고 영화를 만들려면 그럭저럭 넘어가 줄 수 있을만큼은 만들어놔야 하네, 싶었고. 예를 들어 많은 이들이 입을 모아 별로라 말하던 후반의 택시기사들의 추격씬은 영화에 택시 기사분들의 시위 장면이 나오지 않은 만큼, 그 분들을 위해 가미된 픽션으로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 언저리의 대사들은 영화에서 가장 별로였지만(참, 요즘 나온 폰트 같은 것도), 위르겐 힌츠페터씨가 돌아가시기 두달전 제작진이 촬영한 그 인터뷰를 보니 잊혀져 괜찮았다.
역피셜이 함께하는 영화지만, 우리는 몰랐던 힌츠페터씨와 김사복씨의 인간관계가 잘 녹아있어 좋은 영화였다. 주제가 주제이니만큼 두 사람의 우정 같은 것을 영화의 첫번째 미덕으로 삼는 것이 내겐 좀 미안한 일이었지만, 다 보고나니 상관없이 좋은 내용이었다.
엄마는 중간에 송강호가 순천에서 국수가게에 들른 장면을 보며, 자신이 딱 그 순천 사람들 같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얼핏 듣기는 했어도 정말 그럴까 싶어 믿지도 않았고, 워낙 정보가 차단되어있어 소식도 제대로 듣지 못했다고 한다. 엄마는 정말 몰랐구나, 그럼 알았다면 지난 군부세력이나 박근혜를 보는 시선이 좀 달라졌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돌아봐도 어떻게 그럴 수 있나 싶은데, 난 초등학교 6학년 때 담임선생님 덕에 한국사의 굵직한 민주화운동은 모두 샅샅히 알 수 있었다. 곤봉에 맞아 피흘리는 사람들의 사진이라던가, 최루탄이 얼굴에 박혀 떠오른 시신이라던가 아주 어릴 때 봤고, 크면서 더욱 자세한 자료들을 살펴본 후였기 때문에 영화가 그리는 정도는 실제보다 덜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엄마는 요즘 젊은 애들은 와서 이런 영화를 봐야한다고 외쳤지만, 오히려 더 잘 알아야하는건 아무리 생각해도 그 시절 엄마와 같은 삶을 산 보통의 중년들이 아닐까 싶다.
푸른 눈의 목격자를 제대로 보지 않아서, 당시 외신기자는 특별대우라도 해줬던 걸까 하고 생각했다. 광주에서 목숨걸지 않은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나에게도 의미깊은 시간이었다.
택시운전사 고증 관련해서 본 사진들이 있는데 이것도 인상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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