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에 서로이웃으로 올리려고 보니 현실 세계 인물들과 너무 많이 이웃이 되어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생각없이 이웃을 받아 뭐가 뭔지도 몰랐는데, 간신히 하나 하나 다 찾아봤다. 다행히 여긴 아무도 모른다. 내 생각에 난 평생에 걸쳐 솔직한 일기를 쓰자고 다짐만 했던 것 같다. 나는 자존심 때문에 일기조차 솔직하게 쓰지 못한 걸까? 난 일기를 쓰면서 스스로의 문제를 정립하고자 하는 숨은 심리도 알았고, 그걸 회피해온 평생도 안다. 앞으로도 아마 안될꺼다. 이 정도도 많이 왔다. 지금도 지워버릴까 싶지만 오늘 일기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이야기가 주가 아닌 것 같아서...


이걸 여기로 옮기며 깨달았다. 친구를 만난 건 오늘이 아니라 3일 전 일이란 걸. 오늘은 꼭 카드를 썼으면 좋겠다. 내일은 학교에 가니, 교내 우체국에서 카드를 보낼 수 있도록.


그리고 샤린이의 종현이가 떠났다고 한다. 나는 무엇보다 그 괴로웠을 마음이 평안해졌기를 기도한다. 떠난 사람들 두고 이런 저런 망상으로 자신이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별로다. 무엇보다 종현이가 행복하길 바란다.


사람들은 우울증이 뭔지 잘 모르는 것 같다. 그게 병인 이상, 정상적인 범주에서 생각해선 안되는데 전혀 고려하지를 않는다. 좋은 사람들이 보내주는 좋은 기운은 우울한 사람들에게 머무르는 시간이 너무 짧다. 오늘 더쿠에서 공감가는 글을 읽었는데 가져오기는 귀찮다. 행복은 찰나의 순간으로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우울의 심연만 남는다는 말. 여기에서 타인의 사랑은 그다지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행복의 찰나와 죽음에 대한 생각도 별개다. 삶에 대한 의지를 좋은 사람들이 늘려준다는 건 다시 공감이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것과 우울증은... 근본적인 문제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걸 인지하게 되었다.


아무튼 오늘은 이상한 날이었다. 오늘이 3일쯤 전이란 걸 빼면.


여지없이 추웠던 겨울. 말도 없이 사라졌다 돌아온 내가 미안해, 변명처럼 편지에 이해해 달라 말했던게 17살 때 였다. 나는 내 우울이 너에게 닿지 않기를 바란다고. 다른 친구들 처럼 미주알 고주알 제 이야기를 늘어놓지 않는 내가 분명 미웠을 법도 한데, 그후로도 섭섭함 같은 건 내비치지를 않았다. 우울이 일상이 되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날들이 지나고, 그 두려움에 입에 담지는 못했지만 죽음이란 단어가 머리 속에 떠오르기 시작한 스무살 무렵, 너는 처음으로 내게 왜 고민을 털어놓지 않느냐며 애교 섞인 투정을 부렸다. 나는 네 이야기 듣는 것도 좋고, 같이 고민해주는 것도 좋아. 내 이야기는 생각이 끝나지 않아서 말하기가 힘든 것 같고 나도 잘 모르겠어서 말을 못하겠어. 이런 나를 넌 도대체 어떻게 이해했을까. 난 지금도 나를 이해못해.


오늘 너는 내게 이야기를 바라는 것 처럼 크리스마스 카드를 쥐어주고 갔어. 카드 보낼 계획을 신나게 이야기하더니, 하나 써달라며 그렇게. 넌 정말 내가 죽고 싶은 순간들을 아는 걸까? 내가 아는 사람들 중 우울과 무기력, 죽음과 가장 거리가 먼 건강한 사람이 너인데. 넌 요즘 아무렇지도 않게 나와 만나 좋다는 이야기를 해. 나랑 이야기하는 시간이 너무 즐겁고, 기다려지고, 우리가 친구라 좋다는 이야기를 해. 그런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해. 그런 말들은 오글거리지도 않고, 지금 나처럼 눈물나지도 않게 자연스럽게 말해. 가끔 넌 내 마음을 다 아는 것 같아. 이런 내가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그 구체적인 날들을 알지는 못해도, 지금 내 기분이 어디쯤에 있는지는 분명히 알고 있는 것 같아. 그래서 나도 널 만나면 좋아. 우리는 시덥지 않은 이야기들을 맥락없이 늘어놓지만 늘 좋아.



내 인생의 몇가지 변곡점에 네가 있다는 사실을 넌 모를꺼야. 난 너처럼 이런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고 자연스럽게 말할 자신이 없어. 내가 너에게 힘들다고 펑펑 운게 보드카 한병을 비운 날이었고, 그 사실 조차 며칠이 지나 떠올라 한참을 후회했어. 시간이 지나도 울적한 내가 울적한 말투로 부담주는 것 같은 이야기는 하고 싶지가 않아. 하지만 니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그래서 이런 나 역시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생각하게 하는 지는 꼭 말해주고 싶어. 



넌 내가 처음으로 진중하게 사과한 사람이야. 그런데 그 때 다른 사람 탓하며 네게 사과한 건 조금 후회되기도 해. 이제는 그러지 않겠지만. 내 잘못을 알면서도 불안한 마음에 이도 저도 못하고, 상대방은 분명 날 싫어하겠지 하며 괴로워만 하던 내가, 네가 여전히 좋아하는 손편지를 썼었지. 믿을 수 없을 만큼 빨리 편지를 읽은 네가, 같이 매점가자고 힘주어 말해줬을 때 얼마나 기쁘고 다행이던지. 인간관계에서 실수해도 솔직한 마음으로 사과하고, 나아진 모습을 보여준다면 상대방도 받아들여줄거라는 걸 믿게 되었어. 넌 말도 정말 예쁘게 하지. 난 말을 예쁘게 한다는 것이 뭔지도 몰랐어. 널 만나고도 수년이 지나 그럴 수 있다는 걸 알았고, 네가 딱 그렇다는 걸 알았어. 네 덕분에 난 타인에게 웃는 얼굴로 좋은 말을 하려고 노력해. 그리고 그러면서 마음이 따뜻해져. 늘 무기력한 내게 항상 많은 이야기를 해줬어. 처음 만난 순간부터 오늘까지 멈추고 있지 않게 해줬어.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도, 회사 그만두던 날도 넌 바로 달려오겠다 말해줬지. 나는 누군가의 좋은 마음이 늘 부담스러웠는데, 널 만나며 변했어. 그 사이엔 몇년이 있어서, 몇년전엔 네 선한 마음을 올곧이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지. 내가 건대에서 울었던 그날, 네가 곁에 없었으면 지금의 나는 훨씬 더 끔찍했을꺼야.



나는 아무것도 해준게 없는데. 네가 나와의 시간이 즐겁다고 할 때 마다 어쩜 그럴 수 있지 싶어. 나는 아무것도 해주는게 없는데. 네 말에 제대로 공감은 해주고 있는 걸까? 이야기는 제대로 들어주고 있는걸까? 



오늘 내가 가장 마음이 못났던 때에 잘해주지 못한 사람들이 생각난다고 했었지? 심지어 이렇게 지독한 우울에 빠지게 한 장본인들 마저. 네가 힘들게 취업했을 때 축하해주지 못한게 너무 미안해. 말한마디 못해줬어. 그런 내가 바보같다는 걸 알면서도. 그날 내 생일이었지. 그 후로 연락했을 때 사실 난 아무 생각이 없었어. 그런데 네 마음이 상했을거란 생각을 나중에야 하게 되었어. 이런 말은 듣고 싶어하지도 않는다는 걸 아는데, 죽기 전엔 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이런 내 마음들이 언젠가는 네게 전해지길 바라고 있어. 내가 정말 괜찮아지면 이런 마음이 있었다, 하고. 왜냐면 여전히 지금은 싫어. 내 우울이 전염병처럼 번져 널 앓게 할지도 모른다는 게 싫어. 넌 강하고 단단한 사람이란 걸 알지만, 그걸 아무렇지 않게 할 만큼 내가 심하다는 것도 잘 알거든.



저녁부터 울다, 괜찮아졌다를 반복하다 새벽이 와서... 카드에 쓸 말들을 골라야 해. 무기력한 내가 이 카드만은 미루지 않고, 크리스마스 전에 도착하게 하고 싶은데. 넌 내게 어떤 이야기를 바란걸까. 난 좋지만은 않은 세상에서 네가 가끔씩 작아질 때, 네 덕에 힘내는 나같은 사람이 있다는 걸 전하고 싶어. 또 너와 함께하며 여전히 좋은 사람으로 있게 하는 남편분에게도 고맙고, 행복을 바란다고 말하고 싶어.


그리고 나는 정말 내가 괜찮아져서, 언젠가 이런 이야기를 해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 이렇게 무겁지 않아도 좋으니까. 난 하루 하루 살수록 죽는게 정답이란 생각이 굳어져가는데, 평범히 잘 살고 싶다는 생각도 하곤 해. 그건 간절히 바라는 무언가라기보다, 막연한 느낌이고 잡히지 않는 신기루 같고, 그런 감정이지만. 내가 평범히 잘 살 수 있게 되면 아마 더 많은 걸 할 수 있겠지. 내가 평범해진다면 좋은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고, 더 많은 걸 베풀 수 있겠단 생각을 해. 그리고 그 첫번째는 항상 너야. 멀쩡한 내가 너에게 좋은 마음을 전해주고 싶다. 살고 싶다고 여겨지는 이유는 그런 것들이야. 넌 처음으로 내가 기도하고 싶게 만든 사람이야. 네가 행복해지기를.



멋대로 구는 친구 이야기를 상담받았었는데 난 그 아이에 대한 연민이 남아서 멋대로 굴어도 받아주자, 싶었다. 이미 그런 마음으로 수년 간 관계를 지속해왔다. 최근에는 화날 정도라 이야기했던 건데, 사실 정말로 별로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그냥 걔가 그렇고, 난 연민을 좀 느껴서 심적으로 전혀 부담이 되지 않지만 그 아이를 위해 만나주는게 좋을까, 싶었던 정도. 하지만 이야기를 하다보니 어쩔 수 없이 내가 꽤나 신경쓰고 있는 것 처럼 보인다는 걸 느꼈다. 내가 생각해도 그렇게 여겨질 것 같다. 하지만 정말 그 아이에 대한 어떤 마음도 동하지 않는다. 그 아이가 전혀 신경쓰이지 않다는 걸 말로 설명하기 위해, 내 마음을 확실히 살펴봤을 때 정말 그렇기 때문에 놀랐다. 도대체 이건 무슨 관계인지. 내가 그 아이를 동정하는걸까? 그런 심한 마음은 아니다. 연민 정도가 딱인데, 사실 어찌되어도 상관없다는 마음이라 신경쓰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린 것 같다. 만나도 괴롭지 않고, 만나지 않아도 괴롭지 않다. 그 아이는 내 인생에 어떤 영향도 주지 않는 것이다. 그 친구를 만날 때 불쌍히 여겨 만났는가 하면 것도 아닌데, 잘 모르겠다. 오래 지속되어온 관계는 그런 경향이 있을 수도 있겠지 싶다. 남일 같이 말하지만 내가 그 친구에 대한 믿음이 사라져 그럴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이 이야기를 일기에 쓰는 건 내가 '아무렇지도 않아'하는 감정을 말로 설명하기 힘들었기 때문에. 다시 한번 떠올려봤다. 


또 아까 더쿠의 우울증 글 이야기인데, 내가 행복한 사소한 순간들에 대해 생각해봤다. 이제는 정말 찾기가 힘들었다. 불과 3,4년 전만해도 날 행복하게 만들었던 것들이, 이제는 그렇지 못하다. 마침 피치가 나오길래, 혹시나 하고 피치를 안아봤는데, 예전에 느꼈던 그 따뜻함이나 믿음이 느껴지지 않았다. 고양이에게 왜 이런 감정을 느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제는 없다.


유일하게 찾은 행복의 순간은 남들 자는 시간에 잠들 때 이다. 

최근엔 딱 한번 있었는데, 여기에 일기도 썼던 날 같다.

그날은 정말 일찍, 푹 잤다. 

일찍 자도 결국은 새벽에 깨 다시 밤을 새곤 했는데, 그날은 정말 달랐다.


그날 이후 오늘까지 다시 밤낮이 바뀌었다. 나란 인간이 너무 얄궂다.


곧 또 다른 친구들을 만나야하는데, 나를 걱정해주는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나를 어떻게 내보일지, 설명해야할지 걱정이다. 내가 말한 소용없다는 부분이 이런 부분이다. 나는 그들의 사랑을 온전히 느끼고 있지만, 그런 것과 내 감정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 아주 처음부터 그랬던 것 처럼.


예를 들어 난 오늘 카드 써야하는 친구가 정말 소중하지만 그 친구에게 의존하거나, 집착하거나 하는 부분이 전혀 보이질 않는다. 생각과 마음이 분리 된 인간 같다. 내가 힘들고, 이렇게나 좋은 친구가 있다면 말도 하고 그럴 것 같은데. 힘들 때 생각이 나거나 할 것 같은데. 안그런 것도 이상하기 그지 없다. 아무튼 난 나를 모른다. 이것도 어쩔 수 없고, 소용없는 일이다.